주상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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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상호는 명나라의 황족으로, 단비 주씨의 아들이며, 황태자 자리를 두고 형제들과 경쟁하다가 서왕(瑞王)에 봉해졌다. 그는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수탈했으며, 1627년 한중을 영지로 받았으나 농민 반란으로 인해 충칭으로 피신했다. 1644년 장헌충의 난으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단비 주씨(端妃 周氏) 소생으로 형제들과 황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다 장남 주상락이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서왕(瑞王)에 봉해졌다. 1627년부터 자신의 영지인 한중에 머물렀으나, 1637년 한중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나 중경으로 피신했다. 1644년 장헌충이 주도하는 민란으로 중경이 함락되자 주상호는 민란군에게 붙잡혀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했다.[1]
2. 생애
주상호는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나 재물을 몹시 좋아하여 백성들을 심하게 착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2. 1. 황태자 책봉 이전
단비 주씨(端妃 周氏) 소생으로, 형제들과 황태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특히 장남 주상락과 삼남 주상순과의 경쟁이 치열했다. 만력제가 황위를 계승했을 때 황태자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셋이 황태자 자리를 다투었다.[1] 만력 29년(1601년)에 주상락이 황태자로 책봉되면서 주상호는 서왕(瑞王)에 봉해졌다.
주상호는 25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들은 만력제에게 빨리 서왕의 결혼을 결정하도록 권했지만, 만력제는 이를 무시했다. 한편, 주상호는 거의 매일 호부에 결혼 비용을 재촉했다. 그는 18만 냥의 돈을 궁중에 숨겼지만, 그 정도의 돈으로는 결혼 예복조차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거짓말이 드러나 주상호는 벌을 받았다. 주상호는 불교의 열렬한 신자였고 여성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재물을 매우 좋아했다. 조정에 내야 할 세금 외에도 여러 세금을 만들어 백성들을 괴롭혔다.[1]
2. 2. 서왕(瑞王) 시절
주상호는 25세가 되도록 혼인하지 않아 대신들의 우려를 샀다. 만력제는 주상호의 혼사를 미루었으나, 주상호는 호부에 지속적으로 혼인 비용을 요구했다. 그는 18만 냥의 돈을 숨겨놓고도 결혼 예복을 살 돈이 부족하다고 거짓말을 하여 벌을 받기도 했다.[1] 주상호는 불교 신자였으며, 여색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재물에 대한 탐욕은 매우 강했다. 조정에 내는 세금 외에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추가하여 백성들을 수탈했다.[1] 천계 7년(1627년)에 한중을 영지로 받았다.[1]
2. 3. 한중 통치와 농민 반란
周常浩|주상호중국어는 숭정제 때 盪寇衛[1]의 관직을 받았다. 1637년(숭정 10년), 왕빈(王斌)이 한중에서 농민들을 조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주상호는 반란 진압에 실패했지만, 황족이었기 때문에 황제에게 용서받았다. 그 후, 전란을 피해 주상호는 사천 지방으로 도망쳐, 사천 총병의 도움을 받아 충칭으로 이주했다.
2. 4. 최후
1644년 장헌충이 이끄는 농민군이 충칭을 함락시키면서 주상호는 사로잡혔다.[1] 진사기와 함께 처형당했으며, 그의 가족들 또한 모두 살해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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